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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 인터뷰와 <논; 기후 위기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보고, 다시 마주하는 '탄소중립기본법'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다시 묻는 실천과 책임

 

신랄한 폭염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정치의 모든 이슈가 한곳으로만 쏠렸던 8월이었습니다. ‘정치’가 함께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논하는 마당이어야 하는데, 씁쓸함은 여전히 남았고 맛봐야 할 매운맛도 아직 남은 것 같습니다. 청소년 언론 <토끼풀>에 실린 활동가의 인터뷰를 읽은 참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범위’로 탄소 감축 목표 정하나”,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뒤늦게 <논; 기후 위기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보면서, 씁쓸하기만 했던 하지만 조용히(?) 지나간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떠올랐습니다. 단 2명의 반대, 2명의 기권. 어떤 결과든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럴 수 있습니다. 단, 그 과정을 돌아볼 이유와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와 관련한 아주 중요하고도 예민한 문제니까요.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우리나라 또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왔습니다.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남은 과제 또한 녹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20년 청소년이 주축이 되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은, 2024년 헌재가 8조 1항에 대해 불합치(헌법 위반이나 당분간 효력을 유지하는 조치) 결정을 내리며 정부와 국회에 26년 2월까지 다시 고민할 시간을 주었죠. 헌재 결정을 환영하던 당시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이제는 여당이 되었습니다. 계엄 이후 ‘기후특별위원회’가 꾸려졌고, ‘시민 숙의 공론화’가 진행됐죠. 시민대표단의 숙의 결과를 찾아보니, 이번 개정안과는 다른 방향이더군요. 숙의 과정을 통해 77%가 ‘탄소 초기 감축형(오목형)’을 선택했습니다. 개정안은 2018년 배출량 대비, 2035년에는 53∼61%, 2040년에는 69∼80%, 2045년에는 84∼90%를 감축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이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환경단체 등의 반발은 크고, 2020년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활동가는 다시 헌법소원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정안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문제는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이익이거나 손해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나의 ‘이익’만을 고집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지킨 ‘이익’으로 요리조리 잘 피해서 조금 늦게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간발의 차이일 텐데. 당연히 시민대표단이 모든 시민의 견해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숙의 과정에서 토론한 의제와 변화한 생각을 짚어보는 건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감축 목표는 세계 평균 감축률보다 높은 수준인 61% 상한선으로 바뀌었고, 이행 방안과 관련해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 요금 인상이나 생활 불편을 감수할 의향도 94.6%이며,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견도 51.0%입니다.

무엇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요? 변화와 위기를 뚜렷이 인지할 각종 수치와 정보였을 수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었을 수도, 그동안의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을 수도, 약자에게 돌아가는 더 큰 피해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이런 의지가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또 간극이 있겠지만, ‘나만 아니면 돼.’가 배제하는 ‘우리’가 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탄소 감축과 관련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많은 것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자유의 제한’이 될 수 있죠. 소비, 이동, 편리와 관련된 것들이니까요. 실은 의식주 모든 것에 얽혀있는 삶 자체이다 보니, ‘뻔한 얘기’라며 고개를 돌리고 ‘어렵다’며 외면하죠. (저 또한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사할 수 없는 많은 행동을 했죠.) 탄소중립기본법과 관련한 많은 경제지들의 논조에서 확인할 수 있듯, 기업이 말하는 경제 활동 자유의 제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성장’은 어떻게 할 거냐고 몰아치면 기운이 쪽 빠지죠. 그런데 자유라는 것은 책임과 동반자이기도 하죠. 타인의 것을 빼앗는 걸 자유라 하지 않으니까요. 선진국과 기업과 또 우리는 뺏어와 누린 게 분명 있습니다.

탄소 감축과 관련해, 저는 초기에 많은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당연히 기업이 동의하지 않을뿐더러 반발이 크리라 예상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구체 방안이 있지는 않습니다. 기업이 말하는 전환을 위한 준비기라는 것을 세세하게 숫자로 따질 역량이 없습니다. 정부의 예산안 관련 문제는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궁금한 게 더 많아지기만 하고요. AI이니 반도체이니, 미래라는 낱말과 짝을 이뤄 우후죽순 계획은 넘쳐나는 것 같은데, 당장 10년 안에 탄소 감축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저의 이런 지지부진한 고민과 실천 때문에 정말 지리멸렬한 지구인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경험할 또 다른 ‘매운맛’이 다가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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