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실존 옆에 두고, 둘의 차이를 봅니다. 존재(being)는 그것을 목적어로 삼는 타자에 의해 좌우된다면, 실존(existence)은 주체를 가리키며 주체의 행동 여하에 따라 성격이나 유무가 결정됩니다. 주도적 행위자 없이 실존을 말할 수 없어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을 풀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둘 다 관계적 조건의 영향을 받지만 존재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입니다. 예컨대, A의 마음에 B의 자리가 있다면 B는 존재(하는 것), 반면에 C의 마음에 B가 없다면 B는 비존재, 즉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B 단독으로 존재와 비존재를 규정할 수 없고 A와 C처럼 다른 관계어 속에서 상상해야 합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두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더듬어요. 코를 먼저 만져 가며 속성으로 기록합니다. 코 끝에서 코끼리를 놓쳤다가 우연히 상아를 만지게 되지만 코끼리 일 리 없다고 적어요. 이때, 코끼리의 코는 존재(하는 요소)이고, 상아는 코끼리에게 비존재라 생각합니다. 앞서 (실존에 비해) 존재는 수동적 성격을 띠며 객체의 관점에선 비존재가 존재하는(있는) 것으로 상상했지요.
이번엔 코끼리를 탐색하는 주체의 관점입니다. 길다란 코도 딱딱한 상아도 코끼리에겐 존재하지만 더듬더듬 알아가는 과정 중엔 코는 존재, 상아는 비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아는 코끼리와 무관하다고 보기 때문에 비존재가 되고, 비존재는 곧 코끼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코끼리에게 비존재는 존재하는(있는) 것이죠. 여기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 코끼리가 그러한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그런데 이런 임의적인 가설에서 바로 보편적인 결과로 점프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비존재는 존재합니다. 다만 존재의 여집합이라기 보다 분포도에 가까울 것 같아요.>>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존재와 비존재 두 ‘개념‘을 견주며 서술하기 위해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제3의 관점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마치 자아나 정체성이 주체에 주목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관계망 없이 규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어요. 수업 시간에 ’정답‘을 맞출 때가 거의 없어서.. 막 던져 보는 거예요.)
‘존재와 실존’ 이라.. 수업(시간이 맞지 않네요;;) 그리고 책을 읽지 않아서 어떤 맥락인지 잘 모르지만 내세우신 가설이 흥미롭습니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도 생각이 납니다. 존재함은 ‘無’에서 ‘有’로 인간(나와 타인)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해당합니다. (이렇게 정리를 해봅니다.) 그러면 ‘실존’은 존재한다는 존재 사실 그 자체
존재는 신(God=essentia)에 의해 공간에 던져진 인간, 사물, 도구. 그 중 無의 상태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바깥에 서 있다는 것은 (실존existence)이라고 합니다. 실존은 인간(나와 타인)만이 가능하다.
:existentia -> ex+sit+stere(set)= 밖에 서있는 것 (예를 들어 바다는 존재하되 실존하지 않는다. 신은 존재하되 실존하지 않는다)
존재의 앎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은 규정짓는 것(비존재)의 범위가 달라진다.
따라서 규정짓지 못하거나 알지 못할 뿐이지 비존재는 존재한다.
대충 글을 이렇게 이해해봤습니다. (철학 전공을 한 사람이 아니라서 엉터리라도 감안해 주세요.^^)
에리히프롬의 ‘자신을 위한 인간’ 책을 한 번 읽어 볼까 합니다.책 제목 그대로 인간만이 자신 즉 ‘자아’를 갖고 자신을 돌보고 관계를 가지며 사랑으로 엮어가는 실존적 존재 일 테니까요.(해티티도 참고해 보겠습니다)
ps: 잘못 알고 있는 점 또는 이해가 잘 안된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용~(오래전 수업을 들었던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Bette Midler 의 'The rose' 의 사랑도 있습니다.
어느 신부님이 실존한다는 건 밖에 서는 것이라고, 소렌님과 똑같이 설명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 단락은.. 잘 모르겠고요..
예전에 과방에 데카르트 책이 있었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르기까지 명징한 영어로 짜임새 있게 논리를 펼치는데 와.. 단지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적어도 책 한 권은 독파하면 좋겠다.. 생각만 하다 말았습니다. 그래도 불문과라며 파스칼, <팡세> 불어본 스터디 시작했다가 며칠 못 가 때려친 적도 있고요. 전반적으로 나이롱 되겠습니다..
그니까 저는 말이죠.. 이미 자명하다고 해서 사상가와 대표적인 컨셉만 짚고 넘어가는 건 흥미롭지 않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으로 실핀 후에 오늘날 현안을 대입하는 식으로 (양이 아니라) 질에 더 중점을 두기를 항상 바랬어요. 그렇게 공부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질문 거리다 싶으면 막 덤비게 돼요. 십자말 풀이 같은 거죠..
지금 떠오른 노래로 인사를 대신 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수요독서반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존재를 실존 옆에 두고, 둘의 차이를 봅니다. 존재(being)는 그것을 목적어로 삼는 타자에 의해 좌우된다면, 실존(existence)은 주체를 가리키며 주체의 행동 여하에 따라 성격이나 유무가 결정됩니다. 주도적 행위자 없이 실존을 말할 수 없어요.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을 풀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둘 다 관계적 조건의 영향을 받지만 존재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입니다. 예컨대, A의 마음에 B의 자리가 있다면 B는 존재(하는 것), 반면에 C의 마음에 B가 없다면 B는 비존재, 즉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B 단독으로 존재와 비존재를 규정할 수 없고 A와 C처럼 다른 관계어 속에서 상상해야 합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두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더듬어요. 코를 먼저 만져 가며 속성으로 기록합니다. 코 끝에서 코끼리를 놓쳤다가 우연히 상아를 만지게 되지만 코끼리 일 리 없다고 적어요. 이때, 코끼리의 코는 존재(하는 요소)이고, 상아는 코끼리에게 비존재라 생각합니다. 앞서 (실존에 비해) 존재는 수동적 성격을 띠며 객체의 관점에선 비존재가 존재하는(있는) 것으로 상상했지요.
이번엔 코끼리를 탐색하는 주체의 관점입니다. 길다란 코도 딱딱한 상아도 코끼리에겐 존재하지만 더듬더듬 알아가는 과정 중엔 코는 존재, 상아는 비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아는 코끼리와 무관하다고 보기 때문에 비존재가 되고, 비존재는 곧 코끼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코끼리에게 비존재는 존재하는(있는) 것이죠. 여기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 코끼리가 그러한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그런데 이런 임의적인 가설에서 바로 보편적인 결과로 점프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비존재는 존재합니다. 다만 존재의 여집합이라기 보다 분포도에 가까울 것 같아요.>>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존재와 비존재 두 ‘개념‘을 견주며 서술하기 위해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제3의 관점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마치 자아나 정체성이 주체에 주목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관계망 없이 규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어요. 수업 시간에 ’정답‘을 맞출 때가 거의 없어서.. 막 던져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