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2월 그래미 상 보이콧을 BTS가 개인 SNS로 공지한 사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팬덤 문화가 태동하고 서서히 자리잡다가 마침내 티켓 파워와 함께 새로운 문화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일련의 흐름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흔히 청소년 게임 문화를 우려하듯 초기엔 그리 건강하지 않은, 일부의 문제적 현상으로 보았어요. 심리적인 어떤 결핍이 일방적인 추종을 낳고, 방송과 음반 업계는 그들을 착취하고 한편 스토커의 등쌀에 톱스타는 괴롭고.. 마치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전이를 병리적으로 해석한 것처럼이요. 그러나, 심리학이 업데이트 되고 전이를 성숙 단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긍정적인 기제로 해석하는 학파도 등장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건전한 팬덤 문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실례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당장 2024년 12월에 첫 모습을 드러낸 응원봉 시위도 이로부터 비롯된 셈입니다. 2016년 촛불혁명의 저변도 그 덕분에 발랄하게 확대되었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권위적인 그래미 측에 인종차별을 주제로 거세게 항의하지 않고도 충분히 BTS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지지를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BTS의 부재에 민감한 광고회사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단가를 재조정하려고 하자, 허를 찔린 그래미 측에서 중언부언 아시안 팝 부문 신설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늉을 합니다. 실로 아티스트와 아미들의 우아하고 눈부신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그 많은 불평등 담론, 헤게모니 다툼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스타와 팬덤이 구축하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어떻게 이들은 선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많지만.. 힘으로 제압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뒤엎으려는 많은 기획들은 결국 반작용과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젊은이들의 방식이야말로 단연 군계일학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스파이더맨인가? 피터 파커인가?” 어느 한 쪽을 택하라는 집요한 추궁에 “Both” 둘 다를 껴안는 톰 홀랜드의 방식처럼 훈훈합니다. 훈훈하고 든든해요. 모르긴 해도 (아마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너무 근사할 거예요.
2027년 2월 그래미 상 보이콧을 BTS가 개인 SNS로 공지한 사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팬덤 문화가 태동하고 서서히 자리잡다가 마침내 티켓 파워와 함께 새로운 문화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일련의 흐름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흔히 청소년 게임 문화를 우려하듯 초기엔 그리 건강하지 않은, 일부의 문제적 현상으로 보았어요. 심리적인 어떤 결핍이 일방적인 추종을 낳고, 방송과 음반 업계는 그들을 착취하고 한편 스토커의 등쌀에 톱스타는 괴롭고.. 마치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전이를 병리적으로 해석한 것처럼이요. 그러나, 심리학이 업데이트 되고 전이를 성숙 단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긍정적인 기제로 해석하는 학파도 등장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건전한 팬덤 문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실례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당장 2024년 12월에 첫 모습을 드러낸 응원봉 시위도 이로부터 비롯된 셈입니다. 2016년 촛불혁명의 저변도 그 덕분에 발랄하게 확대되었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권위적인 그래미 측에 인종차별을 주제로 거세게 항의하지 않고도 충분히 BTS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지지를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BTS의 부재에 민감한 광고회사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단가를 재조정하려고 하자, 허를 찔린 그래미 측에서 중언부언 아시안 팝 부문 신설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늉을 합니다. 실로 아티스트와 아미들의 우아하고 눈부신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그 많은 불평등 담론, 헤게모니 다툼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스타와 팬덤이 구축하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어떻게 이들은 선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많지만.. 힘으로 제압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뒤엎으려는 많은 기획들은 결국 반작용과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젊은이들의 방식이야말로 단연 군계일학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스파이더맨인가? 피터 파커인가?” 어느 한 쪽을 택하라는 집요한 추궁에 “Both” 둘 다를 껴안는 톰 홀랜드의 방식처럼 훈훈합니다. 훈훈하고 든든해요. 모르긴 해도 (아마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너무 근사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