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머리를 콩 콩 박았습니다. 독서반에서 한참 혼자 고민에 빠져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진 탓에 웃음거리가 된 것 같았지만… ‘그래, 어차피 난 바보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행복한 바보가 되자’ 라는 이상한 결론을 얻고 기분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ㅎㅎ
<편견> 수요일 독서반 2회차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시간과 잠을 쪼개어 주어진 분량을 모두 읽고 갔습니다. 고생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읽었다,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수님과 다른 분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특히 27장 <관용적 성격>을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오죽하면 ’이 챕터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 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살짝 이야기를 꺼냈는데 (홍당무님 외에는) 공감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엄청 민망했어요 ㅎㅎ 저에게는 27장에 나온 ’There are shades of gray.’ ‘To them, a person is a person.’ ‘Some tolerant people are fighters.’ 등 표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또 ‘shaking the Nature’ 일화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사랑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더불어 관용의 중요한 요인인 공감, 감수성, 사회지능, 유머, 자아통찰력 등의 개념도 하나 하나 흥미로웠습니다.
27장에 나온 ‘똘레랑스’를 갖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다 자라 부모 말도 안 듣고, 누가 굳이 잘못을 지적해주지도 않고, 고집 세고 자기 세계가 확고한 어른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관용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얻을 순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추려보면 ‘최대한 성찰을 많이 하고, 최대한 SNS와 종편을 피하자’는 힌트를 주신 것 같습니다.
독서반 막바지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고약한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집단들(일베, 펨크, 태극기부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저들을 저런 방식으로 ‘범주화’하는 것도 ‘편견’일 수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이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조직적으로 모이면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짚어주셨습니다. 이들의 근원에는 (실은 존재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박탈감, 집단적 죄책감에 대한 거부, 어쩌면 죄책감으로까지 성숙시키지 못한 단순한 불편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가설도 제시해주셨습니다. 연이어 다른 분들께서 가족이나 지인 등의 사례를 들어 저들을 설득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실제 경험을 공유해주셨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숨이 턱 턱 막혀서 저도 모르게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ㅎㅎ ‘이렇게 다른 우리가, 너무도 달라 서로가 미워질 지경인 우리가,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무거운 고민을 안고 저물어버린 독서반…
책의 저자는 우리가 각자 지닌 인간성을 따른다면 (in line with their own private consciences) 편견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 저자의 희망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사회과학이 미처 발달하지 못한 50년대의 눈먼 믿음을 지니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축적된 삶이 부족한 탓에 순진무구 푸르댕댕한 시선으로 인간사 세상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쉬이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로 내일 출근을 방해받아선 안되니 ㅎㅎ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내일 라이브에서 뵈어요!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머리를 콩 콩 박았습니다. 독서반에서 한참 혼자 고민에 빠져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진 탓에 웃음거리가 된 것 같았지만… ‘그래, 어차피 난 바보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행복한 바보가 되자’ 라는 이상한 결론을 얻고 기분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ㅎㅎ
<편견> 수요일 독서반 2회차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시간과 잠을 쪼개어 주어진 분량을 모두 읽고 갔습니다. 고생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읽었다,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수님과 다른 분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특히 27장 <관용적 성격>을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오죽하면 ’이 챕터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 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살짝 이야기를 꺼냈는데 (홍당무님 외에는) 공감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엄청 민망했어요 ㅎㅎ 저에게는 27장에 나온 ’There are shades of gray.’ ‘To them, a person is a person.’ ‘Some tolerant people are fighters.’ 등 표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또 ‘shaking the Nature’ 일화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사랑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더불어 관용의 중요한 요인인 공감, 감수성, 사회지능, 유머, 자아통찰력 등의 개념도 하나 하나 흥미로웠습니다.
27장에 나온 ‘똘레랑스’를 갖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다 자라 부모 말도 안 듣고, 누가 굳이 잘못을 지적해주지도 않고, 고집 세고 자기 세계가 확고한 어른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관용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얻을 순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추려보면 ‘최대한 성찰을 많이 하고, 최대한 SNS와 종편을 피하자’는 힌트를 주신 것 같습니다.
독서반 막바지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고약한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집단들(일베, 펨크, 태극기부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저들을 저런 방식으로 ‘범주화’하는 것도 ‘편견’일 수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이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조직적으로 모이면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짚어주셨습니다. 이들의 근원에는 (실은 존재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박탈감, 집단적 죄책감에 대한 거부, 어쩌면 죄책감으로까지 성숙시키지 못한 단순한 불편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가설도 제시해주셨습니다. 연이어 다른 분들께서 가족이나 지인 등의 사례를 들어 저들을 설득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실제 경험을 공유해주셨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숨이 턱 턱 막혀서 저도 모르게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ㅎㅎ ‘이렇게 다른 우리가, 너무도 달라 서로가 미워질 지경인 우리가,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무거운 고민을 안고 저물어버린 독서반…
책의 저자는 우리가 각자 지닌 인간성을 따른다면 (in line with their own private consciences) 편견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 저자의 희망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사회과학이 미처 발달하지 못한 50년대의 눈먼 믿음을 지니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축적된 삶이 부족한 탓에 순진무구 푸르댕댕한 시선으로 인간사 세상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쉬이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로 내일 출근을 방해받아선 안되니 ㅎㅎ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내일 라이브에서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