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해시 스튜디오에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해시 커피하우스 중 첫 번째 날에 참여했는데요. 그날의 호스트 외에도 두 분의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주석 이정훈 교수님. 지금의 해시라디오에서 각종 주석을 첨가하시며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저는 그날 현장에서 처음 마주했습니다. 덕분에 함께했던 다른 해시민과 해원님들도 무척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다른 한 분은 누구였을까요? 맞습니다. 이번 데이터 리터러시 맛보기 강좌를 진행하신, 스패너 CP님으로 알고 있던 박철우 교수님. 그날도 무척 조용히 무던하게 그 현장에 함께하셨어요. 해시칼리지 워크샵 막전막후 라이브에서 공개됐던 그 모습을 저는 미리 본 셈이지요. 수리과학, 통계학을 연구하신다는 말씀을 듣고서는 정준희 교수님께서 구상하시는 아카데미(지금의 해시칼리지)는 그 범주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가 부풀어올랐습니다.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와 TBS의 <정준희의 해시태그> 시절 접했던 정 교수님은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매우 깊으신 것과는 별개로 그 주된 연구대상을 ‘언론’으로 삼으신 게 분명했는데, 다른 분야 그것도 ‘숫자’를 다루는 연구자와 어떠한 조화를 이루어내실지 궁금했습니다. 그 접점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학부 시절 겨우겨우 공부하던 저는 통섭(統攝, consilience) 이란 단어를 꽤 자주 마주한 기억이 있습니다. 융합(融合, fusion 혹은 convergence)이란 용어도 통섭과 비슷한 취지로, 비슷한 용례로 소비된 경향이 있었던 때가 있었지요. 이 단어가 저에게는 어떠한 느낌이었냐면, 2020년대를 달구고 있는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나 AI, 딥페이크, CHAT GPT 등을 마주했을 때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 실체와 본질에 대한 고민,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끼치게 될 영향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그 단어를 북마크처럼 추가하여 ‘돈이 되는 분야’로 인식하게 하고 거기에서 수익 창출을 도모하려는 속셈만이 넘쳐나는 모습. 언급하면 뭔가 있어보이고, 그 시절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언급하면 더 주목받고 생색은 격하게 낼 수 있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2대 원장을 지냈던 안철수의 ‘새정치’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하여 저는 통섭을 짬뽕, 융합은 혼종 이런 식으로 아주 거칠고 격하게 취급하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지난날의 제 모습이기도 하네요. 이 말씀을 드리는 건, 강의실 그 현장에서 통섭과 융합이란 단어가 느닷없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강의 초반부에 박 교수님께서 확률과 통계의 기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어원 등을 살펴볼 때 통계(統計)를 ‘(국가 등) 큰 집단을 다스리는 데 쓰이는 계산’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신 대목, 그리고 1교시를 마무리하기 위한 정 교수님의 질문과 정리 시간에 언급하신 데이터(data)에 관한 정의와 함께 이어지는 통계의 정의에 관한 말씀이, 이번 강의에서 제가 가진 의문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 교수님께서는 데이터를 ‘무언가가 궁금해서, (이를 해소하고자) 분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제된 자료’로 정리해 주셨고, 박 교수님께서도 의도하였든 아니든 모인 자료에서 의미를 발견하도록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답변을 이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정 교수님께서는 데이터는 흔히 어딘가에 ‘널려 있다’고 취급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한 점이 생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가 데이터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지요. 아래는 강연 중 말씀하신 예시입니다.
“‘건강이 어때?’라고 하면 안색을 살피고 체온을 재는데, ‘결혼할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면 이때는 안색을 살피거나 체온을 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직관이라는 점을 언급하시고서 통계의 ‘통’은 그 의미가 실제 사용하는 ‘거느린다는 의미의 統’이 아니라 ‘통달하다는 의미의 通’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수치 등의 자료 즉 데이터를 ‘꿴다’는 뜻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해석(강의 중에 실제 사용하신 표현은 ‘문제제기’)을 제시하셨습니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치나 데이터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 통계(학)이 지닌 힘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 교수님의 해석은 이에 부합하는 말씀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거느린다는 의미의 統으로 통계를 이해하자면 통계와 통계학을 부수적인 수단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통달하다는 의미의 通으로 통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하면, 어느 분야든 주어진 현상에서 의미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도식화하고 이를 이용하여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계와 통계학이 지닌 힘을 비로소 온전히 체감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주어진 신뢰수준 하에서 말이지요.) 단순히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짬뽕과 혼종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통섭과 융합이 가능하게 하는 ‘교두보(link)’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통계와 통계학은 아주 적절한 동반자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시다면.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야구와 농구 그리고 최근에는 축구까지, 이른바 2차 스탯을 비롯한 다양한 지표를 토대로 한 통계분석을 이용하여 전력분석과 승부예측뿐 아니라 부상가능성을 예측하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걸 보시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생활과 전혀 무관한 다른 동네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강의 중간에도 박 교수님께서 소개하신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머니볼>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데이터 리터러시 맛보기 강좌에 참여한 다른 해시민 해원님이 언급하지 않은 내용 중 제가 기록하고 기억했던 부분을 재구성하였습니다. 통계(학)에 관하여 비전문가와 사실상 문외한에 가까운 대중을 대상으로 그 문턱을 낮추어 데이터 리터러시는 이런 것이라는 점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혹은 <DUNE Part 1>을 본 것과 아주 비슷한 경험으로 이번 강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분야, 이 세계관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된 시간. 저만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 교수님과 이 교수님께서는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제일 관심있게 지켜볼) 여론조사와 관련된 몇몇 개념(신뢰수준과 표본오차 등)에 대한 박 교수님의 답변을 이끌어 내셨지요. 그리고는 강의가 끝났습니다. 다음 강의 안 듣고는 근질근질할 것 같이 매조지으셔서,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후 강의를 등 긁으며 그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네요. CP 박철우 교수님의 다음 칼럼과 강의가 기대됩니다 😁
(추가)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강의 도중에도 지나가는 말씀으로 언급하셨지만, 결국 그 끝은 숫자로 귀결될지도 모릅니다. 그 숫자가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일이고요.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여 정제된 데이터에서 어떠한 현상의 원인과 이를 기반으로 일반화하는 규칙 등을 제시하기까지, 씨줄과 날줄을 엮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그 결과물을 다시 풀어헤쳐, 결론에 다다르게 한 근거를 살펴보기도 할 겁니다. 조립과 해체, 인코딩과 디코딩.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모호한 무언가를 숫자로 변환하고, 다시 그 변환된 숫자를 우리의 말로 번역하는 일. 이 과정에서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는 숫자 때문에 진입장벽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분야를 연구하거나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용어임에도 그 영역을 벗어나면 이는 암호 취급받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해시민 해원님의 다양한 경험이 이 지점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장 봉준호 감독의 ‘1인치 자막 장벽 너머 펼쳐질 영화의 신세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적당히 배우며 익힌 피아노를 이후 대학 입학 후 약 8년 가까운 시간을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후에 피아노를 연습해보고자 악기 앞에 막상 앉으니 오선지와 콩나물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 이를 해결해보고자 기를 쓰고 시간을 투입했습니다. 오선지와 콩나물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때까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제법 필요했지요. 그 사이 저를 도운 건 제 두 귀였습니다. 노래를 듣고 88개의 흑백 건반에서 음역대가 일치하는 건반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소리를 찾아내고, 이 소리를 연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두 손과 두 발의 궤적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노가다를 한 셈이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반복 숙지. 네, 맞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한다면 바로, 통계와 통계학에서 다루는 그리고 이후 강의에서 소개할 개념에 관하여 꾸준히 복습하고 익히는 일입니다.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기. 쉽지 않지만, 어느새 익숙해지면 그래서 자연스러워지면 우리는 그만큼 더 성장했을 거예요 😃
- POSTSCRIPT -
이날 강의가 있기 며칠 전 저의 생각을 이렇게 글로 옮겼습니다. 통계와 통계학은 이러한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방에서 실제 메스를 쥐고 살을 에며 봉합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집도의가 그 공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 공간에서 환자의 바이탈을 잡는 마취과 전문의의 역할이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디어’를 통하여 접한 모습만으로 표현한 것으로, 실제는 아니 그러할 수 있겠습니다.)
인코딩과 디코딩의 경계를 넘나들며 숫자와 데이터를 우리의 언어로, 자음과 모음과 알파벳을 가지고 ‘맥락이 있는 문장’으로 엮어냄을 업으로 삼으셨으니, 서 말 되는 구슬을 ‘꿰는 참맛’을 보여주실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생각을 미리 들여다볼 리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저는 스파이스 멜란지에 중독된 프레멘도, 물 달라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 베네 게세리트도, 그리고 아가모토의 눈(타임 스톤) 없이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보는 퀴사츠 헤더락도 아니거든요.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요. 허허허.
이럴 때는 그저 이런 말을 하면 된다고 배웠습니다.
찌찌뽕 뽕찌찌 😆
작년 여름 해시 스튜디오에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해시 커피하우스 중 첫 번째 날에 참여했는데요. 그날의 호스트 외에도 두 분의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주석 이정훈 교수님. 지금의 해시라디오에서 각종 주석을 첨가하시며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저는 그날 현장에서 처음 마주했습니다. 덕분에 함께했던 다른 해시민과 해원님들도 무척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다른 한 분은 누구였을까요? 맞습니다. 이번 데이터 리터러시 맛보기 강좌를 진행하신, 스패너 CP님으로 알고 있던 박철우 교수님. 그날도 무척 조용히 무던하게 그 현장에 함께하셨어요. 해시칼리지 워크샵 막전막후 라이브에서 공개됐던 그 모습을 저는 미리 본 셈이지요. 수리과학, 통계학을 연구하신다는 말씀을 듣고서는 정준희 교수님께서 구상하시는 아카데미(지금의 해시칼리지)는 그 범주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가 부풀어올랐습니다.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와 TBS의 <정준희의 해시태그> 시절 접했던 정 교수님은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매우 깊으신 것과는 별개로 그 주된 연구대상을 ‘언론’으로 삼으신 게 분명했는데, 다른 분야 그것도 ‘숫자’를 다루는 연구자와 어떠한 조화를 이루어내실지 궁금했습니다. 그 접점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학부 시절 겨우겨우 공부하던 저는 통섭(統攝, consilience) 이란 단어를 꽤 자주 마주한 기억이 있습니다. 융합(融合, fusion 혹은 convergence)이란 용어도 통섭과 비슷한 취지로, 비슷한 용례로 소비된 경향이 있었던 때가 있었지요. 이 단어가 저에게는 어떠한 느낌이었냐면, 2020년대를 달구고 있는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나 AI, 딥페이크, CHAT GPT 등을 마주했을 때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 실체와 본질에 대한 고민,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끼치게 될 영향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그 단어를 북마크처럼 추가하여 ‘돈이 되는 분야’로 인식하게 하고 거기에서 수익 창출을 도모하려는 속셈만이 넘쳐나는 모습. 언급하면 뭔가 있어보이고, 그 시절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언급하면 더 주목받고 생색은 격하게 낼 수 있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2대 원장을 지냈던 안철수의 ‘새정치’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하여 저는 통섭을 짬뽕, 융합은 혼종 이런 식으로 아주 거칠고 격하게 취급하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지난날의 제 모습이기도 하네요. 이 말씀을 드리는 건, 강의실 그 현장에서 통섭과 융합이란 단어가 느닷없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강의 초반부에 박 교수님께서 확률과 통계의 기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어원 등을 살펴볼 때 통계(統計)를 ‘(국가 등) 큰 집단을 다스리는 데 쓰이는 계산’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신 대목, 그리고 1교시를 마무리하기 위한 정 교수님의 질문과 정리 시간에 언급하신 데이터(data)에 관한 정의와 함께 이어지는 통계의 정의에 관한 말씀이, 이번 강의에서 제가 가진 의문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 교수님께서는 데이터를 ‘무언가가 궁금해서, (이를 해소하고자) 분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제된 자료’로 정리해 주셨고, 박 교수님께서도 의도하였든 아니든 모인 자료에서 의미를 발견하도록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답변을 이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정 교수님께서는 데이터는 흔히 어딘가에 ‘널려 있다’고 취급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한 점이 생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가 데이터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지요. 아래는 강연 중 말씀하신 예시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직관이라는 점을 언급하시고서 통계의 ‘통’은 그 의미가 실제 사용하는 ‘거느린다는 의미의 統’이 아니라 ‘통달하다는 의미의 通’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수치 등의 자료 즉 데이터를 ‘꿴다’는 뜻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해석(강의 중에 실제 사용하신 표현은 ‘문제제기’)을 제시하셨습니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치나 데이터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 통계(학)이 지닌 힘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 교수님의 해석은 이에 부합하는 말씀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거느린다는 의미의 統으로 통계를 이해하자면 통계와 통계학을 부수적인 수단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통달하다는 의미의 通으로 통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하면, 어느 분야든 주어진 현상에서 의미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도식화하고 이를 이용하여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계와 통계학이 지닌 힘을 비로소 온전히 체감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주어진 신뢰수준 하에서 말이지요.) 단순히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짬뽕과 혼종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통섭과 융합이 가능하게 하는 ‘교두보(link)’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통계와 통계학은 아주 적절한 동반자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시다면.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야구와 농구 그리고 최근에는 축구까지, 이른바 2차 스탯을 비롯한 다양한 지표를 토대로 한 통계분석을 이용하여 전력분석과 승부예측뿐 아니라 부상가능성을 예측하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걸 보시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생활과 전혀 무관한 다른 동네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강의 중간에도 박 교수님께서 소개하신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머니볼>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데이터 리터러시 맛보기 강좌에 참여한 다른 해시민 해원님이 언급하지 않은 내용 중 제가 기록하고 기억했던 부분을 재구성하였습니다. 통계(학)에 관하여 비전문가와 사실상 문외한에 가까운 대중을 대상으로 그 문턱을 낮추어 데이터 리터러시는 이런 것이라는 점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혹은 <DUNE Part 1>을 본 것과 아주 비슷한 경험으로 이번 강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분야, 이 세계관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된 시간. 저만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 교수님과 이 교수님께서는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제일 관심있게 지켜볼) 여론조사와 관련된 몇몇 개념(신뢰수준과 표본오차 등)에 대한 박 교수님의 답변을 이끌어 내셨지요. 그리고는 강의가 끝났습니다. 다음 강의 안 듣고는 근질근질할 것 같이 매조지으셔서,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후 강의를 등 긁으며 그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네요. CP 박철우 교수님의 다음 칼럼과 강의가 기대됩니다 😁
(추가)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강의 도중에도 지나가는 말씀으로 언급하셨지만, 결국 그 끝은 숫자로 귀결될지도 모릅니다. 그 숫자가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일이고요.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여 정제된 데이터에서 어떠한 현상의 원인과 이를 기반으로 일반화하는 규칙 등을 제시하기까지, 씨줄과 날줄을 엮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그 결과물을 다시 풀어헤쳐, 결론에 다다르게 한 근거를 살펴보기도 할 겁니다. 조립과 해체, 인코딩과 디코딩.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모호한 무언가를 숫자로 변환하고, 다시 그 변환된 숫자를 우리의 말로 번역하는 일. 이 과정에서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는 숫자 때문에 진입장벽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분야를 연구하거나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용어임에도 그 영역을 벗어나면 이는 암호 취급받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해시민 해원님의 다양한 경험이 이 지점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장 봉준호 감독의 ‘1인치 자막 장벽 너머 펼쳐질 영화의 신세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적당히 배우며 익힌 피아노를 이후 대학 입학 후 약 8년 가까운 시간을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후에 피아노를 연습해보고자 악기 앞에 막상 앉으니 오선지와 콩나물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 이를 해결해보고자 기를 쓰고 시간을 투입했습니다. 오선지와 콩나물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때까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제법 필요했지요. 그 사이 저를 도운 건 제 두 귀였습니다. 노래를 듣고 88개의 흑백 건반에서 음역대가 일치하는 건반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소리를 찾아내고, 이 소리를 연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두 손과 두 발의 궤적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노가다를 한 셈이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반복 숙지. 네, 맞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한다면 바로, 통계와 통계학에서 다루는 그리고 이후 강의에서 소개할 개념에 관하여 꾸준히 복습하고 익히는 일입니다.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기. 쉽지 않지만, 어느새 익숙해지면 그래서 자연스러워지면 우리는 그만큼 더 성장했을 거예요 😃
- POSTSCRIPT -
이날 강의가 있기 며칠 전 저의 생각을 이렇게 글로 옮겼습니다. 통계와 통계학은 이러한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생각을 미리 들여다볼 리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저는 스파이스 멜란지에 중독된 프레멘도, 물 달라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 베네 게세리트도, 그리고 아가모토의 눈(타임 스톤) 없이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보는 퀴사츠 헤더락도 아니거든요.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요. 허허허.
이럴 때는 그저 이런 말을 하면 된다고 배웠습니다.
찌찌뽕 뽕찌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