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달 수있었지만 여러 의견도 듣고 싶어 새로 올립니다.^^
류토피아님 말씀처럼 권력의 유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거울신경’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레몬을 한 입 크게 베어 먹는 것을 보면 우리 입에도 침이 고이며 인상이 써지게 하는 신경이죠.
근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거울신경이라는 게 무리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무뎌진다는 겁니다.
인간의 소위 ’악한 본성’을 섬에 고립된 아이들의 권력투쟁을 통해 보여주는 <파리대왕>이 노벨상을 받아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이를 비판한 책 <휴먼카인드>는 2차세계대전 당시 공습상황에서 영국사람들이 보여준 이타심이나 섬에 고립된 아이들의 협업 등의 실제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본능적으로 선’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오히려 인간은 ’선’하냐 ’악’하냐라는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은 다분히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경과학자 제임스 펠런의 <괴물의 심연>에서 보면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무리의 2퍼센트 정도가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지고 있게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요런 사람들이 권력지향적이라고 하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이겠죠.
무리 안에 그런 사람이 2퍼센트 정도 있을 때 살아남아 번식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저자인 제임스펠런, 연구하다가 자신이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다분하다는 걸 안 겁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환경덕에 잘 다스려졌던 것뿐이라네요^^)
다분히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합니다.
저도 솔직히 선과 악이 100퍼센트 상대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마저도 논쟁의 여지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네요.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 있을 뿐이죠.
더없이 좋으신 저의 시모께서 TV조선을 보시고 세월호 유가족을 욕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장대익교수의 <공감의 반경>에서 ’정서적 공감’에서 ’인지적 공감’을 넓혀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간은(혹은 동물은) 생리적으로 권력을 가지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므로 끊임없이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겠죠.
거기에 사회과학이 들어가 있고…
요즘 많이 보이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랑데뷰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제 아파트 사람들 설정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영화는 재밌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거다라고 못박는 것 같아서요.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많이 오해할 뻔 했지요.
댓글로 달 수있었지만 여러 의견도 듣고 싶어 새로 올립니다.^^
류토피아님 말씀처럼 권력의 유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거울신경’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레몬을 한 입 크게 베어 먹는 것을 보면 우리 입에도 침이 고이며 인상이 써지게 하는 신경이죠.
근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거울신경이라는 게 무리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무뎌진다는 겁니다.
인간의 소위 ’악한 본성’을 섬에 고립된 아이들의 권력투쟁을 통해 보여주는 <파리대왕>이 노벨상을 받아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이를 비판한 책 <휴먼카인드>는 2차세계대전 당시 공습상황에서 영국사람들이 보여준 이타심이나 섬에 고립된 아이들의 협업 등의 실제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본능적으로 선’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오히려 인간은 ’선’하냐 ’악’하냐라는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은 다분히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경과학자 제임스 펠런의 <괴물의 심연>에서 보면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무리의 2퍼센트 정도가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지고 있게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요런 사람들이 권력지향적이라고 하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이겠죠.
무리 안에 그런 사람이 2퍼센트 정도 있을 때 살아남아 번식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저자인 제임스펠런, 연구하다가 자신이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다분하다는 걸 안 겁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환경덕에 잘 다스려졌던 것뿐이라네요^^)
다분히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합니다.
저도 솔직히 선과 악이 100퍼센트 상대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마저도 논쟁의 여지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네요.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 있을 뿐이죠.
더없이 좋으신 저의 시모께서 TV조선을 보시고 세월호 유가족을 욕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장대익교수의 <공감의 반경>에서 ’정서적 공감’에서 ’인지적 공감’을 넓혀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간은(혹은 동물은) 생리적으로 권력을 가지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므로 끊임없이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겠죠.
거기에 사회과학이 들어가 있고…
요즘 많이 보이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랑데뷰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제 아파트 사람들 설정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영화는 재밌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거다라고 못박는 것 같아서요.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많이 오해할 뻔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