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나 북콘서트와 같은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어떤 질문을 건넬 것인가'를 꽤 심각하게 고민하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질문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질문거리를 바로바로 생각해내지 못할 수도 있고, 설령 떠오른 질문거리를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이유는 다양하겠습니다만, 아무튼 현재 저는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의 제약이 있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다가오지만, 참여하신 해시민 해원님들의 질문은 저를 포함하여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의문과 호기심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미처 제가 떠올리지 못한 이야기를 들으며 더 많이 배워나가는 현장이 즐겁습니다. 정준희 교수님과 참여하신 모든 해시민 해원님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3회차 강의 초반부에 선과 악(Good and Evil) 그리고 위선에 관한 부분을 다룹니다. 검색하니 이런 뜻이 있다고 나오네요. 원문은 여기를 클릭
HYPOCRISY
a situation in which someone pretends to believe something that they do not really believe, or that is the opposite of what they do or say at another time
누군가가 실제로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척하는 상황 (연기) 또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때에 따라서는 반대로 표출되는 상황
위 단어의 어원 중 '연기하다 / -하는 척 하다'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글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글이어서 종종 다시 읽고 고민하는 글이었어요. (유독 이번 강연에서는 떨렸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발언기회를 요청하였습니다. 전문을 읽어드린 건 아니어서, 여기에 링크를 남깁니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 아래는 당시 현장에서 제가 읽은 부분입니다.
사회학자 조형근 작가(전 한림대 교수) - [세상읽기] 위선,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 한겨레 칼럼 (2021.05.02.)
나도 저 역겨운 위선자 무리에 속하지 않을까? 대단한 고백도 못 되지만 내 삶은 내 글만큼 정의롭지 않다. 유독 글 쓸 때만 정의롭다. 글쓰기가 점점 힘든 이유다. 나에게 선함이랄 게 있다면 내면에서 우러나온 참된 원칙이라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연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대개 비슷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 규범을 지키는 이유는 남들도 지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현 정권의 ‘내로남불’, 위선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다. 권력의 위선에 대한 비판은 늘 옳다. 어떤 세력은 이참에 아예 정직한 노동을 비웃으면서 부동산이며 코인이며 투기 욕망을 정당화하고 부채질한다. 그러나 위선으로 입은 상처를 솔직한 악덕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위선이야말로 선을 닮고 싶은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증거한다. 위선이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인 이유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냉소하기보다는 위선의 모순 속으로 걸어가야 할 까닭이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
강연 말미에 실천 가능한 해법을 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첫 번째(선구자/pioneer)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이백 몇 번째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제가 소개한 대목 중 마지막이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냉소하기보다는 위선의 모순 속으로 걸어가야 할 까닭이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어렵지만, 그리 할 수 있도록 모두가 손을 내밀고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어느 영화에서 덤덤히 이렇게 말합니다. COURAGE.
다만,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두고 싶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셔도 좋습니다.
'8월 16일부터 독립운동하는 자'는 기필코, 반드시 걸러내자.
- POSTSCRIPT -
1. 현장에서, 그리고 랜선으로 참여하신 분들은 아마도 저마다의 감상을 가지고 계실 거예요. 어떠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이곳이든 다른 방식으로든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제가 글을 소개하고 난 다음 교수님께서 "목사님의 설교 중 성경 한 구절을 읽은 것 같은데, 제가 의도했나요?"라는 발언을 하셔서 멋쩍으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지점이 제 입장에서 재미있었던 것이. 이날 강의 초반부에 '선과 악을 영어로 어떻게 칭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저는 단박에 'Good and Evil'을 떠올렸는데요. 앞에 계신 어느 해원님께서는 다른 단어(Vice and Virtue)를 말씀하시긴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럴법도 한 게, 개인적으로는 개신교가 대한민국에서 특히 왜 이 모냥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지에 관하여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어서이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이날 마지막 슬라이드의 내용 중 '천국 Kingdom of Heaven'과 '하느님 나라 Kingdom of God'를 설명해 주신 대목 역시. 주기도문을 곱씹어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대목이 정확하게 '하느님 나라'를 대변합니다. 하늘에서 이미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도 실현하리라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대다수, 특히 보수 성향의 한국 개신교에서는 '사후세계'로서의 천국 입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걸 보면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혹은 기도하는 자가 그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에게는 교수님께서 이 대목을 언급하실 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3. 해시칼리지가 만들어진 뒤 첫 번째 강의에 저에게는 '어른 김장하' 같은 분의 도움으로 세 번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강연이나 북콘서트와 같은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어떤 질문을 건넬 것인가'를 꽤 심각하게 고민하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질문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질문거리를 바로바로 생각해내지 못할 수도 있고, 설령 떠오른 질문거리를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이유는 다양하겠습니다만, 아무튼 현재 저는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의 제약이 있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다가오지만, 참여하신 해시민 해원님들의 질문은 저를 포함하여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의문과 호기심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미처 제가 떠올리지 못한 이야기를 들으며 더 많이 배워나가는 현장이 즐겁습니다. 정준희 교수님과 참여하신 모든 해시민 해원님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3회차 강의 초반부에 선과 악(Good and Evil) 그리고 위선에 관한 부분을 다룹니다. 검색하니 이런 뜻이 있다고 나오네요. 원문은 여기를 클릭
위 단어의 어원 중 '연기하다 / -하는 척 하다'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글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글이어서 종종 다시 읽고 고민하는 글이었어요. (유독 이번 강연에서는 떨렸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발언기회를 요청하였습니다. 전문을 읽어드린 건 아니어서, 여기에 링크를 남깁니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 아래는 당시 현장에서 제가 읽은 부분입니다.
사회학자 조형근 작가(전 한림대 교수) - [세상읽기] 위선,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 한겨레 칼럼 (2021.05.02.)
강연 말미에 실천 가능한 해법을 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첫 번째(선구자/pioneer)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이백 몇 번째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제가 소개한 대목 중 마지막이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냉소하기보다는 위선의 모순 속으로 걸어가야 할 까닭이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어렵지만, 그리 할 수 있도록 모두가 손을 내밀고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어느 영화에서 덤덤히 이렇게 말합니다. COURAGE.
다만,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두고 싶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셔도 좋습니다.
'8월 16일부터 독립운동하는 자'는 기필코, 반드시 걸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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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에서, 그리고 랜선으로 참여하신 분들은 아마도 저마다의 감상을 가지고 계실 거예요. 어떠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이곳이든 다른 방식으로든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제가 글을 소개하고 난 다음 교수님께서 "목사님의 설교 중 성경 한 구절을 읽은 것 같은데, 제가 의도했나요?"라는 발언을 하셔서 멋쩍으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지점이 제 입장에서 재미있었던 것이. 이날 강의 초반부에 '선과 악을 영어로 어떻게 칭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저는 단박에 'Good and Evil'을 떠올렸는데요. 앞에 계신 어느 해원님께서는 다른 단어(Vice and Virtue)를 말씀하시긴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럴법도 한 게, 개인적으로는 개신교가 대한민국에서 특히 왜 이 모냥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지에 관하여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어서이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이날 마지막 슬라이드의 내용 중 '천국 Kingdom of Heaven'과 '하느님 나라 Kingdom of God'를 설명해 주신 대목 역시. 주기도문을 곱씹어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대목이 정확하게 '하느님 나라'를 대변합니다. 하늘에서 이미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도 실현하리라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대다수, 특히 보수 성향의 한국 개신교에서는 '사후세계'로서의 천국 입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걸 보면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혹은 기도하는 자가 그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에게는 교수님께서 이 대목을 언급하실 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3. 해시칼리지가 만들어진 뒤 첫 번째 강의에 저에게는 '어른 김장하' 같은 분의 도움으로 세 번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